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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레전드 차범근이 정말 대단한 이유 - (차붐, 갈색폭격기)

by 가아앗 202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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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최고의 레전드 축구선수인 차범근 선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해외에서는 갈색 폭격기, 차붐이라고 불렸으며 그 당시 독일에 있던 대한민국의 많은 광부와 간호사분들의 희망이자 영웅이였습니다.

 


출생 : 1953년 5월 22일 
신체 : 179cm, 78kg
포지션 : 최전방 톱, 오른쪽 윙어, 공격형 미드필더
소속팀 : 신탁은행 (1976)
공군 축구단 (1976~1979)
SV 다름슈타트(1978~1979)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979~1983)
바이어 04 레버쿠젠 (1983~1989)

 

 


차범근이 활약했던 분데스리가에서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에서 모두 UEFA컵 우승을 달성하였습니다.
또한 키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으로도 2회 선정,  분데스리가 11 시즌 동안 리그 308경기 98골로 외국인 최다 득점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pk를 차지 않았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옐로카드를 단 한 장을 받으며 페어플레이 정신이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군대, 다름슈타트

 

차범근 선수의 주요 키워드 중 하나인 군대. 1976~1979년 동안 27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만 26세의 나이로 분데스리가의 SV 다름슈타트로 가게 됩니다. 차범근은 다름슈타트에서 첫 경기를 선발로 뛰게 됩니다. 77분의 시간동안 2개의 어시스트를 아시아선수가 기록하며 주목을 한눈에 받게 됩니다. 

 

하지만 군복무 단축에 대한 논란이 생기며 다름슈타트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군 복무를 5개월을 더하게 됩니다. 지금 시대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군복무 이후에도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인 모습입니다.

 

 

 프랑크푸르트

 


만기 제대 후 차범근은 프랑크푸르트에 입단하게 됩니다. 첫 시즌만에 분데스리가 공격수 3위를 기록하는 엄청난 폼을 보여주며 프랑크푸르트를 UEFA컵 정상에 올렸습니다. 

 

이후 82/83 시즌을 끝으로 프랑크푸르트의 재정상황이 악화되면서 팀에서 고 주급자인 차범근 선수를 바이어 레버쿠젠으로 이적하게 됩니다.

 

 

 레버쿠젠

 


차범근 선수가 이적할 당시 레버쿠젠은 중하위권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차범근이 오면서 85/86 시즌에 팀을 6위까지 올리며 UEFA컵에 진출시키는데 성공합니다. 이후 전력이 상승한 레버쿠젠은 87/88 UEFA컵을 우승하게 됩니다.

 

다음 시즌인 88/89 시즌을 끝으로 만 36살 독일에서의 12년을 보낸 차범근은 은퇴를 하게 됩니다. 엄청난 자기 관리가 있었기에 당시 최고의 리그였던 분데스리가에서 오래 활약할 수 있었을 겁니다.

 

 

 주요 커리어

 

국가대표 136경기 출장 56골, 한국인 선수 최초로 센추리 클럽 가입, 한국인 선수 역대 최다 A매치 득점 기록, 세계 최연소 센추리 클럽 가입(24년 139일), 독일 분데스리가 리그, DFB-포칼, UEFA 컵을 다 포함하면 372경기 121골, 분데스리가 주간 베스트 11에 36회 선정 이외에도 나열할 수도 없는 대단한 기록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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